2002년 9월호 통역번역 저널 (이카로스 출판) 소개기사로 부터 발췌



 한국어 통역・번역자 고바야시  (KOBAYASHI ) 마미 ( MAMI )

1955년에 태어남。한국 서울출신。대학 3학년까지는 한국에서 지내고、일본 세이신여자대학에 교환유학생으로 내일。
졸업후 와세다대학 어학교육연구소에서 일본어를 배우고、결혼후 일본에 귀화。
현재 한일・일한 통역・번역자로서 활약。한국어 통역안내업 자격을 갖음。번역서에『도시락 편지』(상파울로)、감수서로『곧 말할 수 있는 한국어 여행회화』(세비도출판)이 있음。


 한국의 다리노릇을 할수있는 통역자로

「대학생 시절에 아르바이트로 했던 통역이、그대로 지금의 일로 연결되었습니다。어렸을 때에는 외교관을 동경했던 적도 있고、그 연장선상에 통역과 번역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학생시절、친구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것을 보고 자신도 하고싶다고 생각하고 있을때 소개받은 것이 통역 일이었다。
고바야시는 대학교 3학년때 한국에서 일본으로 유학。졸업후도 일본에서 공부를 계속하여、현재의 지위에 이르렀다。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부터。제2외국어로의 공부였다。일본에 흥미와 관심이 있었으므로、교환유학 얘기가 있었을때 맨 먼저 손을 들었다。 「일본에서는 대학의 기숙사에 들어갔는데、주위에 사람들이 모두 천사처럼 보였어요(웃음)。당시는 한국에서 온 유학행이 저 혼자여서 지금처럼 적극적인 교류는 없었지요」  
졸업후에는 한국에 돌아가지 않고、본격적으로 일본어를 익히기 위해 와세다대학의 어학교육연구소에서 배웠음。그곳의 과정을 수료함과 동시에、통역 아르바이트에서 알게된 남편과 결혼。일본에 귀화한다。그때쯤에는 일본어도 숙달되어、에이전트에 등록하여 통역・번역의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 받은 큰 일은「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통역。이 일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고바야시에게 잊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통역하는 중에 도저히 입안에서  안나오는、말하고 싶지않은 표현과 단어가 많이 나온다。그래도 업무상 통역하지않으면 안되는, 힘든 일이었다。 「지금은 통역할 때、되도록 감정적인 말을 그대로 통역하는 일은 피하고 있습니다。이 말을 해버리면 이 상담은 끝이나 버린다고 생각되면、의미를 바꾸지 않고 조금 부드러운 말로 한다던지 하여 대처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무거운 체험을 했기때문에 그래서、그것을 다음의 일에 유용하게 쓰게된 것이다。


 언제나 자신을 연마함으로써 일하는 데에 폭을 넓혀  


육아를 하는 기간중에는 적극적으로 일을 받지 않았으나、요즘2、3년은 정력적으로 활동을 히고있다。마침 한국어에 대한 수요가  시기와 겹쳐져 순조롭게 일이 들어오게 되었다일본어도 입에서 자연히 나오게 되고、일본어로 생각을 하는것도 힘들지 않게되었다。      「최근에는 큰 일은 에이전트 경유로、작은 일은 인터넷을 통해서 직접 수주하고 있습니다통역과 번역일은 거의 반씩。 IT와 정보계의 일이 늘고 있어요」  
국제회의의  동시통역과 순차통역 、그리고 법정통역도 소화시키며、방송에서의 통역에서는 취재때 동행하기도 한다。번역은 매뉴얼번역을 비롯하여 비즈니스번역、출판번역도 한다。올해는 축구 월드컵 관계의 일이 늘었다。고바야시도 스카이 퍼펙트 TV에서 방송통역의 일을 했다。 「될수록 많은 일에 흥미를 갖고 일을하고 싶다。좋아하는 것만을 가려서 하면 자신의 힘에 브러시 업이 안되니까。모토는 『구애받지 않고 거절하지 않는다』입니다
한국어는 물론 네이티브、일본어도 거의 네이티브와 똑같이 사용할 수 있는것이 고바야시의 강점이기도 하다。그래도 2개의 언어 어학력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게을리하지 않는다。한국의 최신 정보는 늘 모으고、새로운 말에도 민감히 하고 있는것과 일본어 책을 적극적으로 읽기도하고、매일 펜을 사용하여 일본어로 문장을 쓰는일 등도 그 한 예이다。또한 、통역이라면 알기쉽고 듣기쉬운 일본어로 말하는 것도 요구되므로、일본어의 발성 연습도 빼놓을 수 없다。 「프리랜서의 일은 한번 실패하면 다음의 일이 오지않게 되어버리므로、한번 한번이 승부인 것입니다。지금보다도 더 자신을 연마해 가고싶다。실력을 쌓아가면 일의 폭도 자연히 넓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최근에는 되풀이해서 일을 주는 사람이 늘었다고 한다.。고바야시의 일이 인정받게 되어 신용을 얻게 된 증거이다。  
외교관이 되어서 나라와 나라를 연결하는 다리노릇을 하는 일을 하고싶다。그런 어렸을 때의 꿈이 형태를 바꾸어 조금씩 실현되고 있다。지금 고바야시는 한국어 통역・번역의 일을 하면서 그렇게 느끼고 있다。


 고바야시의 책

 『도시락 편지』 조양희 저서   고바야시 번역
엄마의 마음을 보냅니다。도시락은  엄마의 젖줄입니다。어린이들은 도시락에서 엄마의 마을을 맛봅니다。도시락에 곁들인 엄마의 편지에서、사랑을 헤아립니다。어린들은 알아야 할 것을 「도시락 편지」에서 배웁니다。

 『곧 말할 수 있는 한국여행 회화』 고바야시 감수
가다가나와 한글 표시로、꼭 통한다! 
레스토랑、호텔、에스테、관광、스포츠 관전…사용할 수있는 프레이즈 만재。